"지금 읽고 있는 이 문장은 거짓이다." 이 짧은 한 줄을 가만히 소리 내어 읽고 참인지 거짓인지 판별해 보세요.
만약 이 문장이 참이라면 문장 내용대로 '거짓'이어야 하고, 거짓이라면 내용이 틀렸으니 '참'이어야 합니다. 참이어도 모순, 거짓이어도 모순인 이 문장은 대체 무엇일까요?

이 문장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. 크레타 사람 에피메니데스가 「크레타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다」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그것입니다. 이천 년 동안 말장난으로 여겨졌습니다.
그런데 1931년, 이 말장난이 수학을 뒤흔듭니다. 스물다섯 살의 쿠르트 괴델이 이 문장을 한 곳만 바꿔 놓았습니다. 「이 문장은 거짓이다」를 「이 문장은 증명할 수 없다」로 바꾼 것입니다.
그러자 역설이 아니라 정리가 되었습니다. 그 문장이 거짓이라면 증명이 있다는 뜻인데, 증명된 것은 참이어야 하니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. 그러니 그 문장은 참인데 증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.
병의 뿌리는 문장이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데 있습니다. 1930년대에 타르스키가 이것을 못 박았습니다. 어떤 언어도 자기 안에서 자기의 「참」을 정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.
그래서 「참」을 말하려면 한 층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. 이 단순한 한 줄이 20세기 논리학의 문을 연 것입니다.
「이 문장은 거짓」이 컴퓨터의 한계를 정했습니다. 괴델과 튜링이 이 자기 참조를 수학과 계산 안으로 옮겼습니다.
그래서 「모든 프로그램의 오류를 잡아내는 완전한 도구」는 원리적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.
참·거짓을 따져 본다
기원전 에피메니데스는 "크레타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다"라고 말했습니다. 자기도 크레타 사람이면서 말입니다.
"나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"라는 문장을 참이라고 해 봅시다. 그러면 내가 한 말이 참이니 나는 거짓말을 하는 중입니다. 거짓이라고 하면 내 말이 거짓말이니 사실을 말한 셈이 됩니다. 꼬리를 물고 뒤집히는 거울 속에 갇히게 됩니다.
자기를 가리키는 말
이 역설의 핵심은 문장이 자기 자신을 직접 가리키는 자기 참조(Self-reference)에 있습니다.
어떤 명제는 참 또는 거짓 둘 중 하나라는 고전 논리학의 '배중률'이 자기 참조 문장 앞에서는 힘을 잃습니다. 논리 체계 안에서 문장의 참/거짓 판정을 언어 자체의 내부 규칙만으로는 안전하게 해결할 수 없다는 균열을 보여줍니다.
참을 정의할 수 없다는 것
알프레트 타르스키는 1933년 진리 정의 불가능성 정리(Tarski's Undefinability Theorem)를 통해 어떤 충분히 풍부한 형식 언어 체계도 자신의 진리 집합(Truth predicate)을 스스로의 언어로 정의할 수 없음을 증명했습니다.
참과 거짓을 논하려면 대상을 서술하는 '대상 언어(Object language)'와 이를 한 단계 위에서 평가하는 '메타 언어(Metalanguage)'를 엄격히 분리해야만 역설을 피할 수 있습니다.
괴델·타르스키
거짓말쟁이 역설의 논리 구조는 1931년 쿠르트 괴델의 제1불완전성 정리의 핵심 뼈대가 되었습니다. 괴델은 산술 체계 안에서 "이 명제는 증명될 수 없다"는 괴델 문장 를 수학적으로 구성했습니다.
이로써 모순이 없는 모든 수학 체계 안에는 '참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명제'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완벽한 수학 공리계를 꿈꾸던 힐베르트 프로그램을 결정적으로 뒤흔들었습니다.
거짓말쟁이 문장과 메타 언어. 명제 : "이 문장은 거짓이다"에 대하여 다음 물음에 답하시오.
(1) 명제 이 참이라고 가정할 때 도출되는 결론을 쓰시오.
(2) 명제 이 거짓이라고 가정할 때 도출되는 결론을 쓰시오.
(3) 타르스키가 진리 정의 불가능성 정리를 통해 자기 참조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 구분한 두 층위의 언어 명칭을 쓰시오.
(1) 거짓이 됨, (2) 참이 됨, (3) 대상 언어(Object language)와 메타 언어(Metalanguage)입니다.
(1) 이 참이라면, 이 말하는 내용 「이 문장은 거짓이다」가 사실이어야 합니다.
그러므로 은 거짓입니다 — 가정과 반대입니다.
(2) 이 거짓이라면, 「이 문장은 거짓이다」가 사실이 아니라는 뜻이므로 은 거짓이 아닙니다.
그러므로 은 참입니다 — 이번에도 반대입니다.
⛔ 참도 거짓도 될 수 없습니다. 참·거짓 둘 중 하나라는 우리 믿음이 여기서 깨집니다.
(3) 대상 언어(object language)와 메타 언어(metalanguage)입니다.
⭐ 타르스키의 처방은 「참이다」라는 말을 그 언어 안에서 쓰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.
· 대상 언어 — 세상에 대해 말하는 층 (「눈은 희다」)
· 메타 언어 — 그 문장에 대해 말하는 층 (「'눈은 희다'는 참이다」)
층을 갈라 놓으면 자기를 가리키는 문장을 애초에 쓸 수 없어 역설이 생기지 않습니다.
2,300 년 전 크레타의 에피메니데스가 「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」라고 했습니다.
가벼운 말장난 같지만, 이 구조가 그대로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가 됩니다. 괴델은 「이 문장은 거짓이다」를 「이 문장은 증명할 수 없다」로 바꾸었을 뿐입니다.
그러자 역설이 아니라 참인데 증명할 수 없는 문장이 되었습니다.
여기 「풀어 보기」는 기본 한 벌입니다. 더 풀어 보고 싶으면 행복수학의 그 단원으로 건너가세요.
자기 참조는 수학과 컴퓨터의 깊은 곳에 있습니다.
참이라고 해도 거짓이 되고 거짓이라고 해도 참이 되는 자기참조의 문장은, 수학 체계 안에서 스스로 증명할 수 없는 참인 명제가 반드시 존재함을 밝힌 괴델의 증명으로 이어집니다 — 제149장 에서 현대 수리논리학의 가장 깊은 문을 열어보세요.
기원전 6세기 크레타의 에피메니데스 전승과 기원전 4세기 밀레토스의 에우불리데스가 체계화한 고대 논리학의 자기언급 역설(Liar Paradox)에서 유래했습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