서울 시내 지도를 한 장 사서 책상 위에 반듯하게 폅니다. 똑같은 지도 한 장을 손으로 마구 구겨서 찢지 않고 원래 지도 테두리 안에 쏙 올려놓습니다.
구겨진 지도 위의 한 점은 바닥 지도의 실제 위치와 단 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이 완벽히 겹치는 점이 반드시 하나 이상 존재합니다. 아무렇게나 마구 구겼는데 어떻게 제자리를 지키는 점이 무조건 생길까요?


1910년 무렵 암스테르담. 스물아홉의 라위트전 브라우어가 이 정리를 증명합니다. 그는 곧 위상수학의 대가로 불리게 됩니다.
그런데 정작 그는 나중에 자기 증명을 부정했습니다. 그는 직관주의라는 입장으로 돌아서서, 「있다는 것만 말하고 어디 있는지 못 말하는 증명」을 수학으로 인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. 자기 이름이 붙은 정리를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.
그리고 이 정리가 바로 그런 정리입니다. 움직이지 않는 점이 있다고만 말하고, 그 점이 어디인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.
1차원에서 보면 까닭이 훤합니다. 길이 1인 막대의 각 점을 다시 그 막대 위로 보낸다고 합시다. 왼쪽 끝은 오른쪽으로 밀리거나 제자리이고, 오른쪽 끝은 왼쪽으로 밀리거나 제자리입니다.
「옮겨 간 자리 빼기 원래 자리」를 재면 왼쪽 끝에서는 0 이상, 오른쪽 끝에서는 0 이하입니다. 값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기 때문에 그 사이 어딘가에서 반드시 0을 지납니다. 그 자리가 제자리로 돌아온 점입니다.
「반드시 균형이 있다」는 것을 보증합니다. 이 정리로 내시 균형과 시장의 균형 가격이 존재함을 증명합니다.
경매 설계, 통신 주파수 배분, 교통 흐름 예측이 모두 「균형이 있다」는 이 보장 위에 서 있습니다.
지도 두 장을 겹쳐 놓는 이야기
고무줄을 늘렸다가 줄여서 원래 자리에 놓아 봅니다. 양 끝을 벗어나지 않게 고무줄을 아무리 비틀어 놓아도 원래 자리 그대로 머물러 있는 점이 적어도 하나는 반드시 생깁니다.
커피잔을 숟가락으로 휘저어 빙글빙글 돌릴 때도, 아무리 물살이 소용돌이쳐도 회전의 한가운데에서 단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점 하나가 반드시 존재합니다.
1차원에서 중간값으로
1차원 선분 에서 연속함수 가 로 갈 때, 라 하면 이고 입니다.
중간값 정리(Intermediate Value Theorem)에 의해 , 즉 가 되는 점 가 반드시 존재합니다. 이것이 1차원 부동점 정리입니다.
2차원 증명 얼개
륏전 브라우어는 이를 차원으로 확장하여 브라우어 부동점 정리(Brouwer Fixed Point Theorem)를 증명했습니다.
콤팩트 볼록 집합(단위 닫힌 공 )에서 자기 자신으로 가는 모든 연속함수 은 부동점 를 적어도 하나 갖습니다. 만약 부동점이 없다면 원판을 둘레인 원으로 연속적으로 축약(Retraction)할 수 있다는 모순이 생겨 대수적 위상수학(호몰로지)으로 증명됩니다.
내시 균형
존 내시(John Nash)는 브라우어 부동점 정리의 다가함수 확장판인 카쿠타니 부동점 정리(Kakutani fixed-point theorem)를 이용하여 모든 유한 게임에 내시 균형(Nash Equilibrium)이 반드시 존재함을 증명(1994년 노벨 경제학상)했습니다.
현대 경제학의 일반균형이론(에로우-드브뢰 모델), 미분방정식의 해의 존재성 정리, 기상학의 대기 순환 모델의 수학적 주춧돌입니다.
부동점 정리와 함수의 연속성. 닫힌구간 에서 정의된 연속함수 이 있다.
(1) 부동점의 정의 를 만족하는 이차방정식을 세우시오.
(2) 구간 안에 존재하는 유일한 부동점 의 값을 구하시오.
(3) 만약 정의역이 열린구간 이라면 연속함수 에 부동점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쓰시오.
(1) , (2) , (3) 이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.
(1) 이므로
(2) 입니다.
근의 공식으로 인데, 은 밖이라 버립니다.
확인 : — 제자리로 돌아옵니다.
⭐ 이 값은 황금비의 역수입니다. 뜻밖의 자리에서 또 나옵니다.
(3) 존재하지 않습니다.
인데 입니다.
⛔ 부동점 정리는 정의역이 닫히고 유계일 때만 보장합니다. 열린구간은 끝점이 없어서 부동점이 가장자리로 새어 나갑니다.
이었다면 이 부동점이 되었을 것입니다.
지도를 구겨서 그 지역 안에 던져 놓으면, 실제 그 자리 바로 위에 있는 점이 반드시 하나 있습니다.
커피를 저으면 움직이지 않는 점이 반드시 있습니다. 지구의 바람도 마찬가지라 바람 한 점 없는 자리가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 있습니다.
재미있는 것은 — 이 정리는 있다고만 말할 뿐 어디인지는 말해 주지 않습니다.
「반드시 있다」는 이 정리는 경제학을 떠받칩니다.
지도를 마구 구겨 원래 지도 위에 올려놓아도 제자리에 머무는 점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성질은, 빵과 햄과 치즈를 단 한 번의 칼질로 정확히 이등분할 수 있다는 위상수학의 연속성과 같은 맥락입니다 — 제139장 에서 공간을 가르는 연속의 힘을 확인하세요.
라위트전 브라우어(L. E. J. Brouwer)가 1911년 《수학연보》(Mathematische Annalen)에 발표한 논문 「Über Abbildung von Mannigfaltigkeiten」에서 콤팩트 볼록 집합 위 연속함수의 부동점 존재성을 증명했습니다.